사순절

깊은 곳에서 올리는 기다림의 기도

"시편 130:1-8"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130:1-2) 시편 기자는 '깊은 데'에서 부르짖는다. 히브리어 '마아마킴(מַעֲמַקִּים)'은 단순히 낮은 장소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가라앉은 심연을 뜻한다. 바다의 깊은 곳, 혼돈의 물, 빠져나올 수 없는 어둠. 그런데 이 시편이 놀라운 것은, 심연에 있으면서도 위를 향해 소리친다는 것이다. 절망의 바닥이 오히려 기도의 시작점이 된다.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 (4절) 여기서 '사유하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셀리하(סְלִיחָה)'는 오직 하느님만을 주어로 취하는 단어다. 사람이 사람에게 베푸는 용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용서는 인간의 관대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용서 앞에 서면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가 일어난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6절) '기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바(קָוָה)'의 원래 뜻은 '줄을 꼬아 묶다'이다.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를 한 줄로 꼬아 하느님께 묶어놓는 것이다. 밤의 파수꾼이 동이 트기를 기다리듯, 그 기다림에는 아침이 반드시 온다는 확신이 서려 있다. 사순절의 이 시간, 우리도 각자의 깊은 곳에 서 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지워지지 않는 허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러나 그 깊은 곳이야말로 하느님을 부를 수 있는 자리다. 새벽 어둠 속에서 목장의 일과를 시작하며 첫 기도를 올리듯, 우리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올리는 부르짖음을 주님은 반드시 들으신다. 파수꾼의 아침은 반드시 온다.

오늘의 기도

주님, 깊은 곳에서 주를 부릅니다. 제 부르짖음에 귀 기울여 주소서. 주께만 있는 용서로 저를 씻기시고,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온 존재를 묶어 주님만을 기다리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