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말씀 하나로 충분합니다

"요한복음 4:4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한복음 4:50) 왕의 신하가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까지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께 간청한 것은 단 하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내려가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말씀 하나를 주셨습니다 —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헬라어 '피스튜오(πιστεύω)'입니다. '믿다, 신뢰하다'는 뜻인데, 이 짧은 본문 안에서 세 번 등장하며 믿음의 여정 전체를 그려냅니다. 48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피스튜오는 눈에 보이는 증거에 기대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50절에서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믿고 가더니(ἐπίστευσεν)'라고 기록됩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나았다는 확인도 없었습니다. 오직 말씀 하나만 품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53절, 집에 도착해 사실을 확인한 뒤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보고 믿는 믿음에서 듣고 믿는 믿음으로, 다시 존재 전체로 믿는 믿음으로 — 피스튜오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단어는 '자오(ζάω)', "살다"입니다. 예수님이 "네 아들이 ζῇ(살아있다)"라고 선언하실 때, 이것은 단순한 병의 치유를 넘어섭니다. 요한복음에서 ζάω는 생물학적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생명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아들의 육신만 고치신 것이 아니라, 한 가정 전체를 생명 안으로 불러들이신 것입니다. 새벽 축사에서 건초를 나르다 보면 어떤 날은 하나님이 멀게 느껴집니다. 기도해도 응답의 표적이 보이지 않고, 안개 속 삼수령 산길처럼 앞이 막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 신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됩니다. 그는 표적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말씀 하나를 받았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믿음이 무엇에 기대고 있는지 정직하게 묻는 시간이 아닐까요. 나는 표적을 요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 하나에 삶을 걸 수 있습니까? 오늘, 당신이 붙들고 있는 그 확인받고 싶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보이는 것에 기대려는 마음을 고백합니다. 표적 없이도 당신의 말씀 하나로 충분하다고 고백하게 하소서. 이 사순절의 고요 속에서, 보지 못해도 믿는 그 깊은 자리로 저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